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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ech

스타트업의 부상, 기존 강호들의 이합집산

 

사진출처: 루시드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주요 스타트업은 미래차에 적용되는 새로운 기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를 포함한 차세대 배터리 기술과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대표적이죠. 이전에는 라이드 셰어링나 로보택시처럼 플랫폼 스타트업이 관심을 받았다면, 미래차 시장의 개막이 목전에 다다르자 이를 구현할 미래의 모빌리티 기술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재편은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죠. 국가별로 자동차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관계를 포함한 자동차 산업 재편의 특징과 흐름을 이해한다면, 이를 통해 새로운 기회 요소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양한 스타트업의 활약성이 돋보이는 북미

아마존이 인수한 죽스는 수동 제어장치가 없는 완전자율주행 차량을 처음으로 공개했다(사진출처: 죽스)

 

미국은 미래차 산업에서 다양한 부문에 있어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캘리포니아주처럼 친환경 기술에 적극적이면서 신기술에 호의적인 시장의 규모가 크다는 점과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평가에 고려하는 다양한 제품 평가 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규 투자를 통해 신기술이 매출과 수익으로 빠른 시일 내에 연결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두 번째로 미국은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IT 기업을 거느린 나라입니다. 이들은 미래차 혹은 미래차의 핵심 기술인 자율주행 기술을 직접 투자·개발, 시험했거나 계획 중이죠. 미국 산업의 주력인 거대 IT 기업들은 강력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동차를 새로운 플랫폼으로 판단하고 투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미국은 전기차, 배터리, 자율주행, 통신 등 미래차 핵심 기술 대부분에 있어 걸출한 스타트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미 테슬라, 리비안 등의 전기차 스타트업은 이미 미래차 시장과 금융 산업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죠. 또한 자율주행 관련 스타트업은 대부분 미국에서 태동했거나 최소한 미국에 현지 법인을 갖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풍부한 개발 환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 시험 주행 허가를 받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점 등 초기 개발이 유리한 환경입니다.

 

사진출처: 죽스

 

다만 미국의 약점은 고전적 자동차 산업 기반의 약화와 제조업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미래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자체 생산 능력 부재, 미국의 핵심 경쟁력인 IT 반도체의 해외 파운드리 생산 의존 등이 대표적 예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포드와 폭스바겐의 연합, 마그나와 LG의 합작사 설립 등의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핵심 부품 생산 역량의 내재화를 추구하는 유럽

스웨덴 노스볼트의 미래 전지 공장 (사진출처: 노스볼트)

 

유럽 자동차 산업에서 결여된 부분은 스타트업입니다. 십 수 년 전부터 실험적 콘셉트를 보였던 친환경 자동차, 경쟁 관계의 브랜드들이 연합하여 설립했던 스타트업, 정부의 강력한 그린 뉴딜에 힘입은 미래차 전략에도 불구하고 유럽 자동차 산업은 취약한 IT 산업 경쟁력과 관련 스타트업이 미래차의 새로운 기술적 요소를 채우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유럽 미래차 산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은 기업은 폭스바겐 그룹입니다. 폭스바겐은 배터리 제조 스타트업인 노스볼트(Northvolt)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등 미래차 관련 제조 기반 육성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도 해외 협력사의 투자나 합작을 통해 핵심 부품 생산 역량의 내재화를 추구하고 있는데요. 유럽 정부는 전반적 전략 방향과 법률적 기반을 제공하며 실제 투자 유치는 기업 간 협력의 영역으로 남겨놓고 있습니다. 미국처럼 단기간 내에 극적 합의 등의 스피드는 기대할 수 없지만, 급작스러운 정책 기조 변경 같은 천재지변적인 상황에서 좀 더 자유로운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겠죠.

 

유럽의 강점인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국내 배터리 제작사와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실제 기술적 기반에서 우리나라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요. 미국처럼 우리의 뒤를 위협할 만한 스타트업은 보이지 않지만, 유럽 시장에서 우리를 위협할 힘은 중국에서 올 것입니다.

 

중국과 유럽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긴밀한데요. 지리 자동차가 볼보의 주인이라는 것, 폭스바겐이 중국 최초의 외투법인이라는 것 정도에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떠오르는 미래차 산업 기지, 중국

사진출처: 니오

 

중국은 전기차 생산량에서 절대적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생산량 세계 1 위 CATL이나, BYD처럼 배터리 생산 능력에서도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유일무이의 존재이기도 하죠. 또한 2017년을 기점으로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은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빅데이터로 인공지능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바이두 같은 거대 포털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이두는 ‘바이두 아폴로(Baidu Apollo)’라는 자율주행 기술 개발사를 통해 2019년 현재 1800여 개의 자율주행 관련 특허를 출원했으며, 홍콩 기반의 ‘오토X(AutoX)’는 중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자율주행 시험 허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토요타와 협력하는 포니.ai, 닛산과 르노, 미쓰비시와 협력 관계이며 전직 바이두 자율주행 전문가가 설립한 위라이드 (WeRide) 등 수많은 기업이 자율주행과 라이드 헤일링 플랫폼을 결합하여 시험 운영에 나섰습니다.

 

쉬둥 차오 모멘타 CEO와 줄리안 블리셋 GM 차이나 사장 (사진출처: 모멘타)

 

모멘타(Momenta)는 미국 GM으로부터 3억 달러(약 3531억 원) 투자를 유치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요. 능동 주행 보조 장치(ADAS)를 납품하며 실용적인 사업 모델과 함께 레벨 4의 자율주행 기술의 개발을 병행하면서 현실적인 접근법을 채택했습니다.

 

사진출처: 엔비디아 드라이브 오린

 

또한 니오의 아담(Adam) 자율주행 통합제어기 사례에서 우리는 중국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니오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역량과 독일의 자동차 제작 기술 등을 조합한 세련된 디자인과 기술적 선진성을 가진 국제적 감각의 자동차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년 ET7과 함께 선보일 니오의 아담 프로세서는 미래차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통합제어기를 중국에서 완성한 첫 번째 사례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산업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매우 부족합니다. 그리고 강력한 생산력, 핵심 부품 역량 등 우리나라와 겹치는 강점도 적지 않죠.

 

인도, 방향성은 뚜렷! 속도는 글쎄?

세계 최대 이륜차 생산업체인 인도의 히어로 모토콥(사진출처: 히어로 모토콥)

 

세계 4위 자동차 시장인 인도는 여러가지 이유로 미래차로의 진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인도는 최악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환경 교통수단을 권장하는 정책을 중앙정부와 주정부 차원에서 시작하고 있는데요. 또한 유럽과의 긴밀한 문화적·산업적 관계나 유선 통신을 건너뛰고 무선통신으로 직행하던 통신 산업의 경험 등에서 압축 성장의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의 미래차 산업에는 두 가지 걸림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장의 낮은 구매력이고, 두 번째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입니다. 이에 따라 인도는 이륜차와 삼륜차의 전동화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미래차의 기술적 측면에서 필요한 것은 일정 수준의 전동 파워트레인 기술, 라이드 헤일링과 바이크 셰어링 같은 플랫폼에 한정될 것이죠.

 

다만 최근 300cc 쿼터급 이륜차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은 경우처럼 마이크로 모빌리티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인도는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유일한 경쟁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새로운 확장성을 위해서는?

LG-GM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사진출처: LG 홈페이지)

 

2030년까지 공격적인 판매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전기차를 필두로 이미 미래차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바로 생산에 투입할 수 있는 기술을 스타트업에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바로 제품화할 수 있는 기술과 부품은 자동차 제작사와 대형 부품사 간 컨소시엄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LG에너지솔루션과 마그나가 합작해 설립한 LG 마그나 e파워트레인이죠.

 

이 회사는 자동차 제작사들이 원하는 스펙으로 쉽게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전동 파워트레인을 생산하는 전문 기업인데요. GM과 LG 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설립한 배터리 제작사인 얼티엄 셀즈(Ultium cells LLC) 유한회사도 또 하나의 예입니다. 전통적 부품 산업에서는 강점을 갖고 있으나 배터리 산업에서는 취약한 유럽은 최대 자동차 제작사인 폭스바겐이 투자하는 배터리 생산업체 노스볼트의 케이스도 있습니다.

 

이렇듯 중장기적으로 미래의 경쟁력을 위한 기술 선점에는 스타트업과의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는 반면, 지금 바로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생산 가능한 기술에는 기존의 대형 부품사와 자동차 제작사들이 협력하는 형태로 미래차 산업은 성장하고 있는데요.

 

전기차 시트 생산을 위해 최근 설립한 현대트랜시스 일리노이 공장

 

그렇다면 현대트랜시스가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일까요? 가장 분명한 점은 적극적으로 다양한 연합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미래 기술의 선점을 위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에는 경쟁 관계에 있는 자동차 제작사들이 중복 투자하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동차 제작사와 전문 부품사가 동시에 투자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대트랜시스 역시 시트와 파워트레인의 새로운 확장성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스타트업을 상대로 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이미 개발에 돌입한 일체형 전동화 파워트레인의 성능 향상을 위하여 필요한 신기술이 무엇일지 면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죠. 자동차 산업에서 스타트업의 중요성이 이처럼 대두된 적은 없었습니다. 미래차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이상 오늘의 사업 환경에 안주할 수 없을 것이며, 미래는 진취적인 자의 것이 될 것입니다.

 

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