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로 향하는 무더위만큼 자동차 업계도 후끈하게 달아오른 한 달이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상반기 실적이 공개된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은 2년 전부터 유지해 온 Big 3 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울러 현대자동차는 2024 CEO 인베스터 데이를 개최하고 한층 구체적인 미래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죠.
다발적으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도 큰 이슈였습니다. 전기차 캐즘(Chasm, 첨단 기술 제품이 일반 소비 시장으로 확대되기 전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된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어서 많은 논란을 낳았죠. 이에 대한 정부와 자동차 제조사들의 대응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밖에도 자동차 업계에 많은 이슈가 있었는데요. 핵심 이슈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봅니다.
1. 상반기 글로벌 빅3, 현대자동차그룹 성장 이끈 하이브리드 자동차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상반기 실적이 발표됐습니다. 성적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가운데, 현대차그룹(현대자동차, 기아, 제네시스)은 판매와 수익 면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며 2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Big 3의 위치를 견고히 다지는 데 성공했죠.
현대차그룹은 상반기에 약 361만 6,000대를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토요타그룹(약 516만 2,000대), 폭스바겐그룹(약 434만 8,000대)에 이은 판매량이죠. 2위 폭스바겐그룹과 판매량 차이는 꽤 나지만, 매출액과 수익성을 따지면 현대차그룹의 기록이 돋보입니다.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토요타그룹은 매출액 약 212조 9,000억 원과 약 22조 5,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폭스바겐그룹은 약 235조 9,000억 원의 매출과 약 14조 9,3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매출액 약 139조 4,599억 원, 영업이익 약 14조 9,059억 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영업이익률 10.7%를 기록한 현대차그룹이 토요타그룹(10.6%)과 폭스바겐그룹(6.3%)을 모두 앞선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상반기 판매량 중 하이브리드 모델은 11.3%(약 40만 9,000대)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기 기준 이 비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건 처음입니다. 올 1분기, 2분기 현대차와 기아 모두 분기 기준 매출·영업이익 기록을 갈아치운 것도 하이브리드차 성장 덕분입니다.
특히 수익성이 높은 SUV의 하이브리드 모델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투싼 하이브리드는 올 상반기 8만5000대 판매되며, 전년 동기 판매량(4만2000대)의 두 배를 웃돌았고, 싼타페 하이브리드도 같은 기간 판매량이 80% 급증해, 4만5100대 팔렸습니다. 전기차 캐즘이 지속되며, 내연차와 전기차의 대안으로 하이브리드차를 선호하는 현상이 재확인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기차 캐즘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 업체인 모터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해 1~7월 미국 전기차 시장의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 현대차그룹은 처음으로 10%를 돌파, 테슬라에 이은 2위를 기록했습니다. 3위 포드(7.4%), 4위 GM(6.3%), 5위 리비안(4.6%) 등 미국 자동차 제조사를 모두 따돌렸죠. 현재까지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를 제외하고 전기차 분야에서 두 자릿수 점유율을 달성한 제조사는 현대차그룹이 유일합니다.
2. 현대차 ‘CEO 인베스터데이’서 중장기 미래전략 발표
현대차는 지난 8월 28일 ‘2024 CEO 인베스터데이’를 개최하고 새로운 중장기 미래 전략 ‘현대 웨이(Hyundai Way)’를 발표했습니다.
현대 웨이는 ▲ 시장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현대 다이내믹 캐파빌리티'(Hyundai Dynamic Capabilities) ▲ 다양한 모빌리티 사업 확장을 위한 '모빌리티 게임체인저'(Mobility Game Changer) ▲ 수소 사회 전환에 대비하기 위한 '에너지 모빌라이저'(Energy Mobilizer) 등 3대 전략을 골자로 합니다.
이날 현대차는 중장기 미래 전략으로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의 유연한 생산을 강조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전동화 전환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하되 시장 상황에 맞게 속도를 조절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HEV 2030년 133만대 판매 목표
하이브리드 차종 확대가 대표적입니다. 현대차는 기존 7종에 적용됐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소형과 대형, 럭셔리 차급까지 넓혀 14종으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하이브리드 모델이 없던 제네시스 브랜드에도 전기차 전용 모델을 제외한 전 차종에 하이브리드 옵션을 제공하기로 했고, 2025년부터는 성능과 연비가 대폭 개선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2028년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총 133만 대의 하이브리드차를 판매할 계획입니다. 현대차는 글로벌 주요 거점의 공장을 적극 활용해 하이브리드 차종 투입을 통한 혼류 생산 체제를 도입하고 부품 공급망 확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기차는 풀라인업 구축해 공략
전기차는 2030년까지 시장 회복을 지켜보면서 모델 수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하이브리드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로 수익성을 확보하는 한편 전동화 수요 회복이 예상되는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 전기차 차종을 21종까지 늘려가기로 했습니다. 특히 경제형 EV에서부터 럭셔리·고성능까지 전기차 풀라인업을 구축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며 다가올 전기차 시대를 선도할 방침입니다.
현대차는 2030년 제네시스를 포함해 총 555만 대의 연간 판매 목표량도 제시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판매 실적 대비 30% 늘었습니다. 전기차는 200만 대로 2030년 판매량의 약 36%를 차지합니다. 주요 시장인 북미에서 69만 대, 유럽에서 46만 7000대를 팔 계획입니다.
배터리 셀·안전성 고도화 초점
현대차는 전기차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배터리 역량 강화와 내재화도 적극 추진합니다. 2030년까지 보급형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신규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배터리 내재화를 위해 현대차에 최적화된 배터리 셀투비클(CTV) 구조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전기차 캐즘 극복을 위해 하이브리드 전략을 강화하면서도 배터리 내재화를 비롯한 전동화 전략도 가속화한다는 ‘양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충시 900㎞ 주행 신개념 EREV 투입…수소 역량 강화도
현대차는 자율주행차 및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개발과 다양한 모빌리티 신사업을 지속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을 계속 고도화하면서 관련 데이터 수집과 동시에 자동으로 인공지능(AI) 모델을 학습하는 체계를 마련해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수소에너지 기술과 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에너지 모빌라이저’ 구상도 공개했습니다. 미래 에너지 패러다임이 수소로 전환되는 시기에 준비된 에너지 사업자로서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한다는 구상입니다.
2033년까지 120조5000억원 대규모 투자…’기업가치제고계획’도 발표
현대차는 ‘현대 웨이’의 실행과 미래 모빌리티 사업 확대를 위해 2033년까지 △연구개발(R&D) 투자 54조 5000억 원 △설비 투자(CAPEX) 51조 6000억 원 △전략 투자 14조 4000억 원 등 총 120조 5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현대차는 앞으로 3년간 4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주당 최소배당금 1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긴 기업가치제고계획도 발표했습니다. 현대차는 총주주환원율(TSR)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고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간 배당,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을 합해 TSR 35%를 목표치를 제시했습니다.
3. 전기차 화재 사고 논란
지난 8월 1일, 인천 청라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후 1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관할 경찰서와 인천소방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이 화재가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EQE 전기차의 배터리 팩을 분해해 조사하는 중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지하주차장의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번 화재 사고의 논란은 해당 전기차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됐다는 점에서 시작됐습니다. 세계 10위 규모의 중국 배터리 업체인 파라시스 에너지(Farasis Energy)가 생산한 NCM 배터리였는데요. 이 배터리는 화재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어 2021년 중국에서도 대규모 리콜이 진행된 바 있습니다.
이번 사고 때문에 전기차의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퍼지고 있습니다. 전기차를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지 말고 충전기도 지상에 배치해야 한다거나, 전기차를 100%까지 충전하는 과충전을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낭설도 나오고 있는데요. 화재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동시에 분명하고 안전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4. 전기차 화재 그 후, 업계 대응은?
전기차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근거 없는 소문들이 퍼지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선 건 현대차그룹이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3차례의 참고자료 발표를 통해 전기차와 고전압 배터리의 안전성을 적극적으로 알렸는데요.
현대차그룹은 자사 전기차에 탑재된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배터리 관리 시스템)가 24시간 배터리의 상태와 이상 징후를 관찰하고 있으며, 위험을 감지하면 차를 안전하게 제어하고 필요 시 고객에게 알려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BMS가 어떤 항목을 모니터링하는지도 세부적으로 소개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BMS에는 3단계로 작동하는 과충전 방지 기술이 적용됐다고 하는데요. 1단계는 BMS와 충전 제어기가 협조 제어해 배터리의 충전량 범위 내에서 안전하게 충전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2단계는 배터리 충전 중 정상 범위에서 벗어날 경우 BMS가 즉시 충전을 종료한다고 합니다. 마지막 3단계는 차량 제어기와 배터리 제어기가 모두 고장난 상황에서 작동하며, 물리적인 안전 회로가 작동해 전류 통로인 스위치를 강제로 차단합니다.
현대차그룹은 BMS 제어뿐만 아니라 배터리 자체도 내구 성능을 위한 안전 마진 설계가 반영돼 있기 때문에 100% 과충전은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인해 소비자들의 걱정이 늘어나고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을 해소하기 위해 ‘전기차 안심 점검 서비스’를 진행한다고 알렸습니다. 대상은 현대차그룹 승용 및 소형 상용 전기차 전 차종이며, 전기차의 안전과 관련된 9가지 항목을 상세히 검사할 예정입니다.
또한 소비자에게 한층 객관적인 배터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의 제조사 정보도 빠르게 공개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전용 전기차에 탑재한 배터리의 전압, 전류, 온도, 충전 상태(SoC), 열화 상태(SoH) 등 7가지 정보를 공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한 이후 BMW, 폴스타 같은 수입차 브랜드를 비롯해 다른 국내 브랜드까지 총 21개 브랜드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했습니다. 배터리 제조사를 살펴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 SDI와 같은 국내 제조사를 비롯해 CATL, BYD, 파나소닉 등 다양했습니다. 이번 화재 사고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파라시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일부 전기차에만 탑재됐죠.
이 밖에도 정부는 전기차 제조사의 배터리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국토교통부 장관의 안전 인증을 받은 전기차 배터리만 제작 및 판매를 허용하는 배터리 인증제도를 내년 2월에서 올해 10월로 앞당겨 시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신축 건물의 모든 지하주차장에 습식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정을 바꾸고, 전국 모든 소방서에 전기차 화재 진압장비도 빠르게 배치한다고 알려졌죠.
제조사와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전기차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5.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달군 소식들
지난 8월 자동차 업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전기차 판매 둔화’, ‘중국’이었습니다. 전기차 캐즘은 유럽, 북미, 아시아를 통틀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전기차 시장을 이끌어 온 테슬라는 물론, 지난해부터 유럽에 활발하게 진출한 중국 전기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줄곧 유럽 베스트셀링 전기차 1위를 차지했던 테슬라 모델 Y는 판매량이 크게 줄었고, 테슬라의 유럽 판매량도 20% 가까이 떨어졌죠. 테슬라의 부진은 상대적으로 제품 라인업이 빈약하고 신차 업데이트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낮은 가격을 무기로 유럽 진출을 밀어붙였던 중국 전기차들의 판매량도 주춤했습니다. EU의 중국산 전기차 관세 강화 정책에 따른 효과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해석입니다.
반면, 중국 내에서는 상황이 정반대였습니다. 자국 전기차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과도한 세제 혜택 때문에 수입 브랜드들은 맥을 못 췄지만, 중국 시장 전체로 따지면 여전히 전기차의 성장세가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7월에는 사상 최초로 중국 승용차 시장에서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판매 비중이 내연기관차를 넘어 51.1%를 기록했습니다. 전기차 캐즘이 전 세계를 강타한 가운데 중국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셈이죠.
여러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은 전기차 캐즘에 대응해 기존 내연기관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중입니다. 토요타, 스바루, 미쓰비시가 손을 잡고 탄소 배출이 적은 신규 엔진을 공동 개발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죠. 르노는 지리자동차와 함께 새로운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개발에 나섰고, 혼다 역시 전기차를 비롯한 하이브리드 기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 전기차 캐즘을 극복하겠다는 뜻이죠.
여기까지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월간 자동차 업계 이슈를 살펴봤습니다. 쾌청한 가을이 오면 더욱 즐거운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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