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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ech

자동차와 시계, 경쟁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쓴다

 

사진출처: 포르쉐

 

자동차와 시계는 수많은 기계 부품이 정밀하게 조합되고 각 부품이 맞물리며 움직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현대 기계공학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봐도 손색이 없는데요. 한 세기 전에는 자동차 계기판을 시계 브랜드가 만들기도 했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자동차와 시계의 절묘한 이인삼각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끊임없이 경쟁과 협업을 반복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자동차와 시계 제조사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자동차와 시계 제조사, 이유 있는 동거

사진출처: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의 적은 라이벌 브랜드가 아니라 바로 시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럭셔리 자동차와 명품 시계 간의 경쟁 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경쟁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협력하는 관계를 맺기도 하는데요.

 

911 에디션 50주년 포르쉐 디자인 (사진출처: 포르쉐)

 

첫 번째 이유는 기술적 바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와 시계는 모두 기계공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죠. 기계의 정교한 작동이 만들어내는 기능성은 인간의 능력에 대한 자긍심을 북돋아주는데요. 자동차는 인간의 이동 속도를 확장시켜주고, 시계는 신의 영역인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 두 제품은 직접 조종하거나 항상 지니고 다닌다는 점에서 친밀성과 확실한 주종 관계까지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진출처: 메르세데스-벤츠

 

두 번째 이유는 아날로그 감성입니다. 디지털 제품은 정확한 기능성을 자랑하지만 블랙박스처럼 내부에서 작동하는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결과물에 한정되는 것이죠. 움직이는 모습과 소리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감흥을 전달하는 아날로그적 성격은 명품 시장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는데요. 자동차와 시계도 마찬가지로 럭셔리한 세그먼트에서 아날로그 감성이 더 많이 존재하곤 합니다. 손 끝에 느껴지는 묵직한 감촉과 존재감에서 오는 럭셔리한 맛이 있다고들 말하죠.

 

세 번째 이유는 역사적 공통성입니다. 산업혁명 이후에 출현한 두 제품은 전통적인 귀족층이 아닌 신흥 상공업 계층과 관계가 있는데요. 마부가 다루던 마차와 시계탑의 대형 시계에 의존하던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와 항상 지닐 수 있는 회중 시계의 인기는 새로운 계층의 역동성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뜨거운 그들의 협업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포르쉐와 태그호이어(사진출처: 포르쉐)

 

자동차에 시계가 필요한 경우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레이스입니다. 태그호이어의 전신인 호이어가 1911년 개발한 ‘타임 오브 트립(Time of trip)’은 자동차와 항공기를 위한 최초의 대시보드 장착형 크로노그래프인데요. 현재 시간과 함께 12시간 주행 시간을 측정하는 스톱워치 기능을 가진 이 크로노그래프는 시각 표시에 계측 기능을 더함으로써 자동차 레이스와 시계의 연관성을 구체화하게 되었습니다.

 

태그호이어는 타임 오브 트립을 시작으로 전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 레이싱 팀과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이어가며 오늘날까지도 완벽한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IWC 샤프하우젠과 파트너십을 이어가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사진출처: 메르세데스-벤츠)

 

럭셔리 자동차와 명품 시계 브랜드의 협력 사례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메르세데스-AMG와 IWC 샤프하우젠, 벤틀리와 브라이틀링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두 사례 모두 차량 안에 시계 브랜드의 이름이 새겨진 아날로그 시계를 탑재했습니다.

 

파르미지아니와 관계를 맺고 있는 부가티 (사진출처: 부가티)

 

부가티의 경우는 좀 색다릅니다. 클래식 럭셔리 브랜드를 초고성능 하이퍼카 브랜드로 재탄생 시키는 과정에서 시계 브랜드와의 첫 협업을 시작했는데요. 하이퍼카로 처음 선보였던 모델 베이론의 출시와 더불어 명품 시계 브랜드 파르미지아니가 베이론에서 영감을 받은 타입 370을 출시한 것이죠.

 

사진출처: 부가티

 

파르미지아니 타입 370은 수직형 무브먼트라는 파격적인 구조를 채택해 시속 400km로 슈퍼카의 성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베이론과 격을 같이했습니다. 부가티의 4도어 슈퍼 세단 콘셉트카였던 부가티 갈리비어의 실내에는 파르미지아니 시계가 장착되었는데요. 차에서 분리한 뒤 손목시계로도 사용할 수 있는 독특한 콘셉트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미래 모빌리티 변화 속 진화를 꿈꾸다

V2X 기반의 주행 안전 기술 등 통합된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는 자동차와 시계

 

자동차와 시계의 환상적인 이인삼각도 디지털로 향하는 시대를 완벽히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아날로그 다이얼을 사용한 자동차 내부의 시계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쿼츠 디지털 시계로 변화했기 때문인데요. 자동차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GPS 신호가 제공하는 시간 정보를 통해 아날로그 시계는 물론 차량의 라이도와 오버헤드 콘솔, 계기판 등에 있는 시계까지 맞춰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동차와 시계의 관계가 영영 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자동차와 시계의 협력은 더욱 긴밀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기능을 강화한 GV60

 

첫번째 예는 V2X 기술 기반의 주행 안전 기술입니다. 차량과 차량, 혹은 차량과 인프라 사이의 통신은 차량의 주행 안전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켜주는데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요소 중 하나가 5G 무선 통신이 제공하는 레이턴시입니다. 실제로 실시간 정보 공유와 같은 효과를 발휘하죠.

 

두 번째는 인카 e-커머스로 불리는 차내 전자상거래 시스템입니다. 차에서 주문하고 결제하며 정확한 시간에 픽업할 수 있는 유기적 플랫폼에서는 정확한 시간 정보와 소요 시간 예측은 필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자율주행차 시대의 라이드 헤일링 서비스를 이용할 때에도 예약과 도착 시간 관리는 매우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자동차와 시계 브랜드의 협업이 럭셔리 시장의 감성적 만족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앞으로는 통합된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새로운 시대의 플랫폼을 위한 핵심으로 진화되는 것이죠. 물리적인 의미에서 아날로그 시계는 점점 사라지겠지만 그 가치와 역할은 오히려 미래차 안에서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나윤석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