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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타는 것과 사람을 만나는 건 비슷하다

자동차를 살 때 심사숙고하게 되는 이유는 워낙 고가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나 브랜드, 사양 등 겉으로 보이는 스펙 외에도 나와 정말 잘 맞는 차인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아무리 고사양의 값비싼 차도 나의 성향과 선호에 맞지 않으면 함께하기 쉽지 않고, 조건이 잘 맞는 차라 해도 긴 시간 잘 운용하려면 처음부터 운전 방식이나 스타일을 맞춰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보통 자동차 브랜드에서 주관하는 수준 높은 드라이빙 스쿨에 가보면 레벨에 관계없이 운전자세를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한다. 무엇보다 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위급상황에서의 대처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 강사들은 운전자가 시트에 올라앉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적절한 운전자세 유지를 무엇보다 강조한다. 엉덩이는 최대한 시트 깊숙이, 무릎과 다리는 발이 끝까지 페달을 밟을 수 있는 각도로, 손은 운전대의 9시 15분 위치에 위치시키고 양팔을 교차하며 180도 회전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는 올바른 자세를 위해 시트를 자신의 몸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자동차와의 대면에서 가장 기본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자동차마다, 사람마다 구조와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기준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차를 새로 샀을 때는 물론, 렌터카 등 낯선 차를 운전할 때도 반드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체형에 맞게 시트를 맞추고 여기에 맞게 미러와 스티어링 휠을 조정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운전 상황에 따라 미세하게 조정을 추가해야 한다. 이는 결국 자동차를 내 몸에 최적화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동차를 나에게 맞춰가는 과정은 마치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 일과도 비슷하다. 누구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먼저 서로를 파악하고 입장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처음에 잘 안 맞을 것 같은 사람이 알고 보면 합이 잘 맞는 수가 있고, 어떤 사람과는 처음에 잘 맞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서로 맞지 않아 불편한 점이 불거지기도 한다. 결국 필요한 과정이 생략되면 나중에 어떤 양상으로든 갈등의 소지가 생기고, 최악의 경우엔 관계를 포기하거나 단절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이런 문제의 근간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관계를 적절히 조정해 가는 과정이 없었거나, 부실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관계에서의 다반사와 마찬가지로 운전을 하다 보면 일반적인 도로 주행 외에도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거나, 길고 긴 국도를 장시간 운전할 일도 생긴다. 때로는 예기치 않게 험로에 진입하고, 악천후를 만나기도 한다. 자동차를 타는 것, 사람과의 관계들 모두 늘 예상 밖의 상황 속에서 미처 몰랐던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생각보다 큰 간극을 확인하기도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러니 지속적으로 시트 포지션을 조율하는 과정을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루틴으로 여기는 게 낫다. 주어진 상황에 맞게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단발적인 행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론 요즘은 자동차 시트 기술이 매우 발전해 운전자의 노력 외에 부가적으로 시트 포지션 설정을 도와주는 고사양 시트들도 있다. 탑승자별로 다양한 시트 포지션 설정을 기억하는 ‘메모리 시트' 기능은 사실상 기본 사양에 가깝고, 탑승자의 체형과 체압 분포를 분석해 올바른 탑승 자세로 유도하는 기술들도 개발되고 있다.

 

긴 시간 잘못된 자세로 운전하면 몸에 무리가 되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만남은 관계의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귀찮고 번거로워도 매 순간 편안하고 바른 상태를 만드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다만 운전할 때 마냥 편한 자세가 좋은 것만도 아니다. 운전자라면 알겠지만,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안전운전에 큰 도움이 된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한 번쯤 시트 포지션을 점검해 보는 건 어떨까. 자동차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말이다.

이경섭(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