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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ulture

세상에 덜 알려진 매혹의 땅 조지아로!

조지아 여행은 블로그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설산을 배경으로 산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교회의 사진. 비현실적인 풍광을 담은 그림으로 보였던 그곳은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깃든 조지아의 ‘카즈베기’였습니다.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시작된 여행

한국에서 최소 1회 이상은 경유해야 도착할 수 있는 조지아

조지아에 왜 가느냐고 꼬치꼬치 묻는 사람들에게 근사한 이유를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사진 한 장을 보고 단번에 홀렸을 뿐이니까요. 아직 세상에 덜 알려진 곳, 아직 자본주의의 때가 덜 묻어 있는 곳으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비교적 순조롭게 준비가 진행되었고, 저의 생일인 6월 27일로 조지아로 떠나는 날짜를 맞추었습니다. 그렇게 가게 된 조지아는 한 달 이상 머물렀을 정도로 매력이 넘쳤어요.

 

조지아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갈아탔습니다. 오랜 비행 끝에 조지아의 수도이자 저의 꿈의 도시인 트빌리시에 드디어 도착할 수 있었어요. ‘꽝’ 소리와 함께 여권에는 6월 27일이라는 익숙한 날짜의 스탬프가 찍혔습니다.

 

 

조지아에서의 첫 도시, 러시아 작가 푸시킨이 사랑한 트빌리시

그림 같은 트빌리시의 전경과 와인을 많이 팔고 있던 구시가지거리

러시아 작가 푸시킨이 사랑했다는 트빌리시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예뻤어요. 때마침 도시를 가로지르는 므트크바리강에는 석양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어느새 케이블카 위에서 트빌리시의 구시가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시온 교회’와 ‘안치스카티 교회’가 보였고, 중세 도시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초현대적인 ‘평화의 다리’도 눈에 들어왔죠. 여행 첫날부터 신구의 조합이 주는 아름다움에 압도되었답니다. 다만 조지아의 여름은 저녁에도 무척 더우니 주의하시기를.

 

 

두 번째 행선지, 그림 같은 마을 시그나기

작지만 운치 있었던 시그나기의 전경들

조지아에서의 두 번째 행선지는 작은 도시 시그나기였어요. 자연이 아름답고 역사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여행자들이 트빌리시에서 당일치기로 오거나 1박을 하는 그림 같은 마을이죠.
 

이곳은 1975년부터 역사지구로 지정되어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18세기에 지어진 요새의 유적과 9세기에 건축되고 17세기에 재건된 성녀 니노의 ‘보드베 수도원’과 성수로 유명하죠. 심수봉의 번안 가요로 유명한 러시아의 노래 <백만 송이 장미>의 주인공,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도 이곳 출신이에요. 

비현실적인 마을의 풍광에 사로잡힌 저는 느긋하게 머물기로 했습니다. 어떤 날은 아침 일찍 산책하러 나가 동화 같은 18세기 마을과 성벽의 아름다움에 한참 동안 푹 빠져보고, 어떤 날은 민박집 안주인과 보드베 수도원에 다녀오고, 또 어떤 날은 이 집의 고양이와 종일 놀기도 했죠.

 

 

와인과 사랑에 빠지는 도시, 텔라비

와인에 눈 뜨게 한 매력적인 도시

시그나기를 떠나 와인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했고, 작지만 모던한 도시 텔라비에 도착했습니다.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숙소의 위치가 중요하기에 릴라 게스트하우스에 안착했는데, 가격은 트윈룸을 혼자서 쓰는 조건으로 1박에 한국 돈 8500원이었어요. 관광도 편했습니다. 주인아주머니의 이웃인 게오르기 아저씨에게 1만 원을 주고 중요 관광지를 돌아보았죠. 

 

그는 짬짬이 집에서 담근 와인을 팔고 카풀로 관광지를 안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우스 와인은 빈 생수통에 덜어서 판매했는데, 보통 2L에 20라리(1만 원)이고, 제가 산 500mL는 5라리였어요. 맥주 덕후인 저의 술 인생에 와인이 끼어든 것은 게오르기 아저씨 때문입니다. 

조지아는 8000년 전부터 와인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김치 하면 한국이듯이, 와인 하면 조지아라고 할 수 있죠. 조지아 전통 와인 제조의 핵심은 크베브리라는 점토 항아리 숙성 기술로, 김장 항아리를 땅에 묻는 것처럼 목만 살짝 튀어나올 정도로 땅에 묻어 발효시킵니다. 조지아 출신의 스탈린은 이곳의 와인을 좋아해서 1945년 얄타회담 당시 처칠과 루스벨트에게 이 지역 와인을 선물했다고 해요.

 

 

드디어 만나게 된 신의 선물, 카즈베기

저를 조지아로 이끈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입니다. 실제로 보면 더 근사한 곳이에요.

저를 조지아로 이끈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가 있는 카즈베기에 도착했습니다. 교회는 해발 5033m의 카즈베기 산 바로 아래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사진이 아닌 두 눈으로 본 교회는 감히 신의 선물이라고 할 만큼 경이로운 경치를 배경으로 도도하게 서 있었어요. 꿈에 그리던 풍경에 정신이 아득했습니다.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길에는 굽이굽이 길을 따라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하는 들꽃과, 들꽃을 꺾어 들고 교회로 돌아오는 성직자, 캠핑 장비를 하나 가득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서양 트레킹 팀들을 만났어요. 카즈베기에서는 게스트하우스 렐라 앤마리에서 묵었습니다. 싱글룸이 1박에 27라리(1만3000원)였죠. 위치도 좋고, 마당도 넓고, 정면에 카즈베기의 랜드마크 교회가 딱 보이는 뷰를 자랑하는 집이었어요.

 

 

하늘 아래 첫 마을, 비현실적인 경치의 우슈굴리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된 우슈굴리

조지아에는 유럽 사람에게 로망인 여행지가 있습니다. 바로 조지아 북부의 우슈굴리 마을이죠. 이곳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 비포장 도로였어요. 깊은 절벽 밑으로는 빙하 협곡이 흐르고, 차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대부분이죠. 1년에 절반 이상이 눈으로 덮여 있다는 이곳은 5월에서 10월 정도까지만 관광객의 접근이 가능합니다. 

중세 시절 마을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곳은 1996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우슈굴리에서는 멋진 산책길을 따라 트레킹을 할 수 있는데, 시카라 빙하 기슭까지는 8km, 도보로 약 6시간이 걸리죠.

 

 

설산과 마을의 조화가 믿기지 않는 마을의 전경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라마리아 교회’에서는 마을의 전경과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시카라 설산의 풍광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해발 5000m의 설산을 눈앞에 두고 한동안 행복감에 빠져 있었어요. 조지아 여행의 진정한 하이라이트가 우슈굴리라는 말이 무슨 이야기였는지 직접 눈으로 보는 순간 실감이 났죠. 비현실적인 경치에 어느새 자꾸 셔터를 누르게 되었습니다.

 

 

천국의 식탁이 펼쳐지는 곳

게스트하우스에서 맛본 천국의 식탁과 길거리 음식들

천국의 식탁이 궁금하다면 조지아로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푸시킨은 “조지아의 모든 음식은 한 편의 시”라고 칭송했다고 합니다. 카즈베기의 렐라 앤 마리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식탁은 세 가지 고기 요리와 다양한 밑반찬이 가득했어요. 마치 전주의 한정식을 방불케 했죠. 곁들이는 술도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차차, 보드카, 맥주를 무제한으로 마시는 일종의 파티 같았어요.

 

조지아 음식은 재료 본연의 맛으로만 깔끔하게 승부를 냅니다.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저녁을 먹다가 코카서스의 높은 봉우리에 걸려 넘어져 그 음식이 쏟아진 곳이 조지아라고 해요. 여행객은 보통 와인으로 유명한 텔라비, 시그나기, 혹은 트빌리시에서 작정하고 근사한 코스 요리를 즐긴다고 합니다.

 

 

나만 알고 싶은 완벽한 여행지, 조지아

잊을 수 없는 조지아에서의 추억들

풍성한 볼거리, 저렴한 물가, 친절한 현지인과 맛있는 음식이라는 네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조지아가 많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이곳만큼은 청정 지역으로 지금처럼 순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요. 한 달 이상을 조지아에 머물며 그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이겠죠?

 동네 아저씨들의 노랫소리, 장관을 이루던 소 떼, 제게 치대던 고양이로 기억되는 조지아. 그림 같은 마을 시그나기에서는 길을 잃기도 했고, 텔라비에서는 와인 맛을 알게 되었어요. 모험과 자연을 좋아하는 저에게 빙하를 보여주기도 했죠. 조지아는 아직 때 묻지 않은 곳이에요.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저는 조지아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다른 곳을 말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만큼 저에게 조지아는 숨겨놓고 싶은 여행지로 남았으니까요.

 현경채 (<매혹의 땅, 코카서스>)저자 사진 현경채, 셔터스톡